·제   목 : [중앙일보] 조우석 칼럼 - 예술 수호천사, 속깊은 후원자들
·작성자 : 이영미술관 ·작성일 : 2009-12-29 ·조회 : 2557
※첨부파일 :

[조우석 칼럼] 예술 수호천사, 속깊은 후원자들 [중앙일보]






눈 밝은 컬렉터·후원가로 페기 구겐하임이 유명하다. 20세기 초 미국에 현대미술을 이식했던 ‘모더니즘의 여왕’인 그와 함께 영국 광고재벌 출신의 아트홀릭(예술중독자) 찰스 사치도 기억돼야 한다. 작가 데미안 허스트를 발굴한 으뜸 공로자가 그 사람이다. 나눔·기부가 강조되는 세밑, 음미해볼 게 컬렉터·후원자의 존재다. 그들이야말로 재산환원·기부와 또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문화연출가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후원자는 재력가·유명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미술사에 축복을 이끌어냈고, “수준 높은 인간 서사시”(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를 구현한 주인공이다.

그로부터 후원을 받은 작가는 내고(乃古) 박생광(1904~85)이다. 당시 70대 나이인 내고는 일본채색화의 아류로 치부됐으며, ‘명성황후’ ‘전봉준’ 등 불세출의 만년작에 손대기 전이었다. 그런 비주류·비인기 작가의 서울 수유리 집을 40대 초반의 평범한 공무원 김이환이 찾으며 인연을 맺는다. 당시가 77년, 김이환과 아내는 흑모란 한 점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물감 살 돈에 허덕이던 작가의 처지를 알리 없었다. 물꼬 튼 1년, 내고가 어렵게 말머리를 꺼냈다.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소. 도와주시겠나?”

며칠을 생각한 김이환이 “형편껏 해보겠습니다.”라고 화답했다. 그가 쓴 『수유리 가는 길』(2004년)의 기록이 그렇지만, 예사롭지 않은 만남이었다. 직후 내고는 수묵화를 접고, 에너지 넘치는 단청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정체상태의 한국화 장르가 조선 500년간 잊어온 ‘색의 옷’을 얻는 극적인 순간이고, 거대한 스케일과 함께 고려불화·고구려 고분벽화의 전통과 이어지는 황홀한 랑데뷰였다. 그래서 현대미술사의 장관이지만, 작가로서는 대변신과 함께 ‘황금의 7년’을 구가했다. 생애 첫 개인전인 백상미술관전(81년)의 기획과 심부름을 자청했던 젊은 후원자와 함께 거둔 공동 승리이기도 했다.

직후 내고는 박수근·이중섭·김환기와 함께 현대미술사에 바로 편입됐다. 놀라운 변화였다. 인기 절정의 화가 천경자의 깜짝 제안도 그때 나왔다. 그는 “선생님의 ‘토함산 해돋이’를 주면, 원하시는 내 그림을 모두 드리겠다.”고 내고에게 말했다. 김이환 부부가 직접 들었던 양 거두(巨頭)의 은밀한 대화가 그랬다. 후원자의 진면목은 그 이후다. 작가 타계 10년 뒤 김이환은 “내고를 공부하러” 환갑 나이에 일본 유학을 결행했고, 돌아와 미술관을 세웠다. 내년으로 설립 10년째를 맞는 ‘경기도의 보석’ 이영미술관은 그래서 탄생했다.

사실 예술후원자는 쉬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멋쟁이 컬렉터인 링컨 커스틴의 존재도 2007년 휘트니미술관 ‘링컨 커스틴 100주년전’에서 알려졌다. 내고·김이환의 우정은 5년 전 ‘박생광 100주년 전’에서 빛났다. 하지만 그게 미술사의 명장면임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부박한 문화풍토 탓이다. 증언자 이경성도 얼마 전 고인이 됐다. 그래도 ‘명성황후’과 ‘전봉준’, 그리고 ‘무속’ ‘무녀’ 시리즈가 우리 곁에 있지 않은가. 내고의 만년 대작이 없는 현대미술사란 얼마나 허전한가! 내년에도 삶과 문화는 계속되리라. 예술가를 위한 숨은 천사도 등장할 것으로 믿는다.

조우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