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조선일보[문화] 선홍빛 ‘명성황후’ 스페인 사로잡다(2003-07-15 게시물)
·작성자 : 이영미술관 ·작성일 : 2006-11-24 ·조회 :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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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선홍빛 ‘명성황후’ 스페인 사로잡다
한국화가 朴生光 바르셀로나서 전시회
강렬한 색채·한국적 상징 찬사 잇따라



▲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박생광 전시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작품‘명성황후’를 관람하고 있다. /金翰秀기자




한국화가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1904~1985)의 한국혼 생생한 작품들이 피카소, 미로, 달리를 키운 고장
스페인 바르셀로나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박생광 화백의 대표작들을 선보이는 전시회가 26일 오후(현지 시각) 바르셀로나 시립 산트
아구스틴(Sant Agustin)문화센터 전시장에서 개막돼 7월 5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경기도와 EU 공동 주최로 ‘경제’
‘문화유산’ ‘정보화사회’ 등을 주제로 26~27일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한국·EU 국제학술회의의 부대 문화행사로 마련됐다. 경기도와 스페인
카탈루냐주(州)는 지난 1999년 자매결연을 맺은 사이. 전시는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송태호)의 주선으로 박 화백의 작품 100여점을 소장한
경기도 용인 소재 이영미술관(관장 김이환)이 작품을 대여해 이뤄졌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한국적인 소재와 화풍의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박생광 대표작들의 첫 스페인 나들이인 이 전시회에는 1981~1984년에 제작된 그의 회심의 걸작들이 선보이고 있다. 이 시기는
팔순에 가까운 박생광이 청년 시절 일본 유학 이후 60년 가까이 그려온 자신의 화풍을 과감히 집어 던지고 일대 변신을 꾀한 때다. 수십 년 모색
끝에 그가 이 무렵 내놓은 신작들은 전통 탱화와 민화의 뚜렷한 형상미와 강렬한 색채의 맥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들. 채색화보다는 수묵에서 우리
전통미를 찾으려 했던 당시 우리 화단에 강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고 당시 분출하던 민중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

13~17세기에
지은 수도원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고풍스러운 전시장 벽면에 걸린 작품 중 백미(白眉)는 1983년작 ‘명성황후’. 가로 330㎝, 세로 200㎝에
이르는 대형 네 폭 병풍작품인 ‘명성황후’는 명성황후의 비극적 최후를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 화염과 선혈이 뒤덮은 듯 온통 선홍빛 화면 속에
울부짖는 말(馬), 뒤집어진 경복궁 향원정, 쓰러진 조선 관군, 울부짖는 민중들과 편안히 잠든 명성황후, 하얗게 피어난 연꽃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수 차례 현장을 찾았던 박 화백은 주변에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세세히 설명하려 하면 제지하면서 “그냥 느끼겠다”며
가부좌하고 1~2시간씩 명상에 잠기곤 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작가가 생전에 스페인에서 전시하기를 염원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김이환 관장은 “작가는 이 작품을 완성해 놓고 ‘됐제(됐지)?’를 연발하며 만족해 하셨다”며 “이민족의 침략으로 인한 참사를 그린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견주고 싶은 생각에서 스페인에서 꼭 전시하고 싶어 하셨다”고 회상했다. 작가 사후(死後) 18년 만에 이루어진 소망인 셈이다.


그 같은 사연이 더해서인지 강렬한 색채와 형상의 피카소, 미로, 달리의 작품들에 단련된 안목의 스페인 관람객들도 첫 눈에 이 낯선
동방의 작가에 매료된 모습이었다. 스페인의 원로 조각가 수비라치는 “설명을 듣기도 전에 ‘명성황후’를 보는 순간 ‘게르니카’가 떠올랐다”며
“박생광 작품 속의 한국적 상징들이 굉장히 강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엘 파이스(El Pais)에 미술평을 기고하는 하이메 비달씨는
“전통과 현대가 섞인 화면의 강한 콘트라스트가 놀랍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명성황후’ 외에 ‘범과 모란’, ‘무녀’ 등과 박
화백의 작품 제작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대형 드로잉 ‘청담 대종사’도 선보이고 있다.

(바르셀로나(스페인)=김한수기자
hansu@chosun.com )